재벌집 막내아들 신드롬 왜?…진양철, 회·빙·환

입력 2022-12-22 16:32   수정 2022-12-22 20:01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신드롬이 뜨겁다. 많은 사람들이 ‘최애 드라마’라고 입을 모으고, 자신의 ‘인생 드라마’로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시청률이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를 보이며 인기를 방증하고 있다.

■ 온라인 게시판 ‘텍스트 데이터’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게시판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온라인 게시판, 뉴스 사이트, 블로그, SNS 등에서 ‘텍스트 데이터’를 수집한 뒤, 그것을 분석해 의미를 찾아내는 텍스트 마이닝을 실행했다. 파이썬과 스크래피(Scrapy)를 이용해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을 검색어로 최근 2주간 올라온 2400여개 글을 수집했다.

이 글들에서 1만8000여개 단어를 추출했다. 드라마 제목과 주인공 진도준 역할의 배우 송중기에 이어 ‘재미’가 많이 언급됐다. 재미와 관련해 긍정적인 의견은 ‘개재미있네ㅋㅋㅋ 매회가 기대되네’, ‘엄청 재미있다. 와우’, ‘단순히 삼성가 얘기가 레퍼런스인 줄 알았는데 타임물 섞으니 재미있네요’ 등이었다.

반면 ‘똑같은 패턴이 반복돼 재미없다’, ‘소설보다 순화돼서 재미없다는게 팩트구나’처럼 부정적 의견도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 몰라서 알아듣지 못할 것 같은데, 찍먹해도 될까? 재미있어?’같이 타인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찍먹’은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잠깐 체험해본다는 의미의 신조어).

등장인물 관련 단어로는 진도준(송중기) 외에 진양철(이성민), 서민영(신현빈), 진성준, 모현민(박지현), 진동기 등이 많이 언급됐다. 송중기에 대해선 ‘자연미남 귀티 모범생 송중기’, ‘송중기 착한남자 나쁜남자 매력 다 있는거 말해 뭐해, 재방송 보는데 개꿀잼’, ‘송중기 결국 미래 못바꾸고 죽을 것 같긴 함’같은 글이 올라왔다.

진양철과 관련해선 ‘머슴을 키워 등 따숩고 배부르게 만들면 왜 안 되는지 아냐. 지가 주인인 줄 안다. 진양철 명언’, ‘진양철 회장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이 ㄹㅇ 뻑간다’ 등의 의견이 눈에 띄었다.

이밖에 삼성그룹, 순양그룹, 원작, 소설, 웹소설, 이병철, 월드컵, 넷플릭스, 우영우, 환혼 등의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 재벌집 막내아들 인기 요인
재벌집 막내아들은 어떻게 큰 인기를 얻었을까. 우선 송중기와 이성민 등 배우들의 열연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이성민은 ‘진양철 회장님 만세!!’, ‘진양철 치매, 연기냐 찐이냐, 꿀잼이네’같은 호평을 끌어내며 드라마 인기에 큰 몫을 했다.

또 다른 인기 요인은 시청자를 사로잡은 스토리다. 스토리는 드라마를 비롯한 모든 콘텐츠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스토리는 시청자들이 주인공 진도준에 감정 이입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지방대 출신으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자신을 죽인 재벌 집안 회장의 막내 손자로 환생해 통쾌하게 복수하는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스토리는 드라마, 영화, 웹소설 등에서 흔히 쓰이는 ‘회빙환 코드’를 채용했다. 회빙환은 회귀, 빙의, 환생의 줄임말이다. 회빙환에는 전형적인 공식이 있다. 실패한(혹은 힘든) 과거사를 가진 주인공이, 음모에 의해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회빙환을 하게 되고, 과거의 능력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새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재벌집 ‘머슴’에서 재벌집 막내손자로 환생한 주인공이 전생의 기억을 무기로 성공하는 모습이 이 공식에 해당한다. 진도준이 흥행할 영화를 미리 알고 투자하거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을 사업에 활용하는 것 등이 전생의 기억을 무기로 삼은 사례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드라마와 영화는 모두 영상콘텐츠이지만, 콘텐츠 소비자를 대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영화의 소비자들은 대개 2시간 동안 어두운 극장에서 집중해서 관람한다. 관객이 집중하기 때문에 관객의 추리를 요구하는 상황을 만들어 지적 긴장감을 일으켜야 관객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관객의 ‘적극적인 읽기’를 요청한다.

이와 달리 드라마 시청자들은 영화에 비해 산만하고 느슨한 환경에서 시청한다. 그래서 시청자에게 스토리 정보를 반복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자가 중요한 정보를 놓쳐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월드컵 4강 등 많은 시청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이용해 영화에 버금가는 시청자의 ‘적극적인 읽기’를 유도했다. 시청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궁금해하면서 드라마에 ‘참여’하게 됐다.

마케팅 활동에서 고객의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고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지식, 정보가 새로운 조건에서 어떻게 바뀌는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전혀 모르는 새로운 내용보다 익숙한 내용(사실, 지식, 정보)에서 출발해 고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이어서 참여와 몰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장경영 선임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지난해 오징어게임에 이어 올해도 ‘K-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올 여름 큰 인기를 끌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라는 대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보다 먼저 세간의 이목을 끈 “추앙하라”의 ‘나의 해방일지’도 기억에 남는 드라마였다.

최근 경험에 더 의존하는 ‘최신 편향(recency bias)’ 탓일 수도 있겠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이 올해의 드라마로 꼽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2017년 선보인 웹소설이다. 남성이 주요 타깃인 판타지 사이트 문피아에서 그 해 최대 히트작이 되었고, 올해 드라마로 등장했다.

웹소설은 이용자들이 매회 돈을 지불해야 하므로 스토리가 늘어지면 인기를 끌기 어렵다. ‘고구마’ 요소는 가급적 제거하고 ‘사이다’를 제공해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재미’있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의 텍스트 데이터 분석 결과, ‘재미’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됐다는 점은 원작 웹소설 만큼이나 이번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많은 재미를 선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선사한 재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이유는 독자와 시청자의 ‘감정의 구조’를 제대로 읽어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구조는 문화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설명한 개념으로, 한 시대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광범위하게 소유한 문화적 패턴이다.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을 분석한 최근의 한 연구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 진도준은 당대 감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 형상’이라고 분석했다.

진도준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환생하기 전 진도준이 살았던 동 시대를 같이 경험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차이가 더 클 수 있다.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경험의 공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는 많다. 이 시대 소비자들이 갖는 ‘감정의 구조’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읽어낼 수 있을까? 마케터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이다.<h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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